“물렸던 포지션은 유연하게 대응하여 무사히 탈출하였습니다.”
마치 물려 있는 모든 사람의 소원을 대신 말해주는 듯한, 이른바 구루들의 꽤나 흔한 발언이다.
실제 탈출했는지 어떤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나는 저 말이 세 가지 의미에서 헛소리이자 실력 없음의 고백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한다.
첫째, 물렸던 포지션이라고 한다.
계획하지 않은 방향으로 포지션이 움직였다는 뜻이다. 시장에 대한 관점이 틀렸거나, 또는 제대로 된 손절 기준을 정하지 않은 채 “설마 여기까지 가겠어?” 하고 들어갔다는 고백이다.
애초에 계획된 매매였다면 물려서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계획대로 손절했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심지어 이 말도 얼마나 속이기 쉬운지… 그건 나중에 논하자). 그 포지션의 손실이 매매법 안에서 예상된 것이었다면 그것은 ‘물린 것’이 아니다.
둘째, 유연하게 대응했다고 한다.
이 말은 대부분 계획하지 않았던 행동을 했다는 뜻이다. 반대 방향으로 크게 베팅하거나, 무리하게 물타기를 하거나, 원래 계획에 없던 방식으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식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대응까지 매매법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 역시 계획된 행동이다. 계획된 매매라면 “유연하게 대응했다”기보다 “계획대로 대응했다”고 말했겠지.
따라서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결국 “저는 계획하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하지 않은 행동을 했습니다.”라는 고백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셋째, 무사히 탈출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손실을 피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잘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그 구루가 유연하게 대응하다가 결국 빠져나오지 못해 손실을 본 경우에도 똑같이 글을 올리는가?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글을 단 한 번도, 정말 한 번도 못 봤다.
좋은 결과를 자랑하고 싶은 사람은 “유연하게 대응해서 무사히 탈출했습니다”라는 이야기만 올린다. 반면 정말 가르침을 주고 싶은 사람, 그리고 자신의 방법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유연하게 대응했지만 결국 손실을 봤습니다.”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손실을 공개함으로써 구독자와 추종자들이 그 실패에서 배우기를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valid한 유연한 대응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매매법을 시장 관점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즉, 시장 레짐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만을 유연한 대응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은 철저하게 규칙 안에 있는 대응이다. 규칙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 안에서 시장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앞서 「예측 가능성과 블랙 스완」에서 이야기했던 조건부 예측이 정확히 이것이다.
조건 = 시장 관점
예측 = 선택된 매매법으로 매매
이것이 매매법을 한층 현실적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우리는 파고를 낮추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이 밀물인지 썰물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은 트레이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이 들어오지 않는데 노를 저으면 안 된다. 뛰어야 한다.
확률론적으로 말하면 결국 기저분포가 변했는데도 같은 행동을 계속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하게 큰 MDD를 감수하면서 장기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레짐이 바뀐 뒤에야 다시 수익이 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할 때 잘 맞는 모델 중 하나가 Hidden Markov Model(HMM)이다.
HMM에서는 우리가 관측하는 결과가 직접 관측하기 어려운 숨겨진 상태에 의해 결정되고, 그 상태에 따라 관측 결과의 확률분포가 달라진다고 가정한다. 많은 퀀트 트레이더들이 시장 레짐을 추정하기 위해 HMM과 같은 모델을 연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실제로 시장 상황은 직접 관측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리고 그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많은 퀀트 트레이더들에게 중요한 과제다.
퀀트 트레이딩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언제 들어갈지를 아는 것보다, 언제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어렵다. 내 엣지가 지금 시장에서도 살아 있는지, 아니면 이미 죽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 또한 너무나 어렵다.
이것이 트레이더가 해야 할 일의 상당 부분이다.
따라서 시장의 정확한 상태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금이 롱이나 숏을 시도할 때인지, 아니면 무포지션을 유지해야 할 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트레이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판단 중 하나다.
자, 독자들은 좋은 매매를 하기 위해서는 엣지가 있는 매매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덕목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바로, 현재의 시장 관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매매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시장 관점 파악이 바로 매매의 삼각형에서 두 번째 꼭짓점이다.
다음 글부터는 심법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다.
사실 심법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매매법 다음에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매매법을 제대로 논하려면 그에 앞서 심법을 먼저 논할 필요가 있다.
마음 역시 시장 상황과 마찬가지로 시시때때로 변한다.
하지만 마음은 시장 상황처럼 그 변화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리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마음이 이러하면 이렇게, 저러면 저렇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다. 매매가 가능한 마음가짐은 결국 거의 한 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법은 마음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관리에 가깝다.
다음 글부터는 구체적으로 FOMO, 뇌동매매 등을 확률적 맥락에서 이야기해보겠다.
이 글은 트레이딩에 관한 교육 콘텐츠이며, 투자 자문이나 특정 매매 권유가 아닙니다.